AI & 미래 기술 트렌드 분석

AI가 종교적 문맥을 이해할 수 있는가

dohaii040603 2025. 6. 2. 03:29

1. 종교적 문맥이란 무엇인가 – 단어 이상의 의미

종교적 문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문장 해석 이상의 복합적 감성과 상징체계를 읽는 능력이 필요하다. 종교란 단어는 언어적 표현과 신화, 의식, 역사적 계승, 사회적 집단성, 도덕 체계, 존재론적 질문 등이 얽힌 복합적 문화 형식이다. 예를 들어 “예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는 문장은 신학적·영적 메시지를 포함하며, 그것을 단지 은유적 표현으로 보는가, 아니면 교리로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해석의 층위가 완전히 달라진다. 이러한 문맥의 미묘한 뉘앙스를 이해하기 위해선, 단순한 언어 모델을 넘어 감정, 역사, 교리의 상호작용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의 AI는 데이터 기반 패턴 인식에는 뛰어나지만, 인간의 내면적 신앙 체계나 영적 경험의 정체성을 인식하는 능력에서는 한계를 보인다. 기계는 ‘경전’, ‘기도’, ‘의례’ 같은 단어를 빈도와 위치로는 분류할 수 있으나, 그것이 내포하는 영적 무게와 상징성은 이해하기 어렵다.

더불어 종교 문맥은 언어의 다의성과 문화적 차이에 크게 의존한다. 같은 단어라도 이슬람에서와 불교, 기독교에서의 사용 맥락이 전혀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희생’이라는 단어는 이슬람에서는 쿠르반(희생제물)의 개념, 기독교에서는 예수의 십자가 희생, 불교에서는 자아의 소멸과 연결된다. AI가 이를 각각 구별하여 맥락에 맞게 이해하려면 종교학, 신학, 인류학, 심리학 등 다양한 학제 간 지식이 융합된 구조를 학습해야 하며, 이는 단순한 알고리즘 훈련만으로는 구현되기 어렵다.

AI가 종교적 문맥을 이해할 수 있는가


2. AI 언어 모델과 종교 담론의 접점 – GPT는 경전을 해석할 수 있는가?

최근 GPT와 같은 대형 언어 모델의 부상은 AI가 종교적 문장도 자연스럽게 생성하고 해석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실제로 GPT 모델은 성경, 꾸란, 베다, 불경 등의 주요 종교 경전을 훈련 데이터로 삼기도 하며, 다양한 종교 전통에서 사용하는 표현을 일정 수준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AI는 종교 담론을 ‘텍스트로서’ 이해할 뿐이며, 신앙 공동체 내에서 문장이 지니는 ‘의례적, 초월적, 정체성적’ 함의를 인식하지 못한다.

예컨대, “기도는 하늘과 인간을 잇는 다리다”라는 문장을 AI는 은유적 표현으로 인식할 수 있지만, 실제 기도에 담긴 내면의 간절함이나 집단의식 내의 위치, 실천적 의미까지 고려하긴 어렵다. 즉, GPT는 경전을 분석하고 요약할 수는 있어도, 해석이라는 종교 행위에서 요구되는 ‘신앙 공동체의 관점’이나 ‘신적 계시라는 믿음’의 구조를 내재화할 수는 없다. 종교적 언어는 이성과 논리만이 아닌 감정과 체험, 초월적 직관에 기반하므로, AI의 해석은 언제나 기능적이지만 존재론적으로는 한계를 가진다.

더 나아가 GPT와 같은 AI 모델은 종교적 다양성에 대해 균형 있게 반응하기 위해 ‘중립적’ 언어를 택하지만, 이로 인해 특정 전통의 정체성을 희석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이슬람의 샤리아에 대한 질문에 대해 AI는 윤리적 법규로 설명할 수는 있어도, 그것이 무슬림들의 삶의 전 영역에 미치는 신적 명령이라는 차원에서는 설명이 약하다. 결국 AI는 종교 문맥을 ‘형식적으로는 흉내 낼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체화하지 못하는 존재’에 머물러 있다.

3. 신성과 인공지능 – AI가 성스러움을 이해할 수 있는가?

인간은 종교를 통해 신성(Sacred)을 경험한다. 이 신성은 이성과 과학이 아닌 신비, 경외, 무조건적 믿음, 초월의 감정에서 비롯된다. 반면 AI는 근본적으로 알고리즘적 계산을 통해 정보를 처리한다. 여기서 본질적인 충돌이 발생한다. 과연 ‘신성’이라는 비가시적·초월적 개념을, 물리적으로 훈련된 AI가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성당의 고요함과 향내, 종소리와 함께 울려 퍼지는 기도 소리 속에서 인간이 느끼는 감동은 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월적 체험이다. AI는 그 장면을 영상으로 분석하고, 사람의 감정 반응을 감지할 수는 있어도, 그 속에 담긴 ‘거룩함’이나 ‘영혼의 떨림’을 체화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해, AI는 ‘신을 본다’는 말이 감성적 체험을 넘어 실존적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판단할 수 없다. 이것은 곧, AI가 ‘신비’를 설명할 수는 있어도 ‘믿음’을 가지진 못한다는 한계를 뜻한다.

종교는 근본적으로 체험의 영역이자 신앙의 실천이기에, 인간 중심의 내면적·영적 구조를 요구한다. AI는 그 위에 선 지식의 재현자일 수는 있으나, 주체적인 종교적 참여자가 되긴 어렵다. 인공지능이 신앙 행위의 ‘도구’가 되는 경우 – 예를 들어 스마트 미사 해설 앱, 불경 리딩 앱, 기도문 생성기 등 – 는 늘어나고 있지만, AI가 수행자, 신자, 혹은 사제로 기능하는 일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믿음은 자유의지와 영혼, 초월에 대한 실존적 응답이기 때문이다. AI는 코드일 뿐이다.

4. 인간의 신앙과 AI의 미래 – 공존의 방향은?

AI는 종교를 이해할 수 없지만, 인간의 종교적 삶을 ‘보조’하거나 ‘확장’하는 기술로 기능할 수는 있다. 이는 ‘대체’가 아니라 ‘보완’이라는 차원에서 가능하다. 예를 들어, AI는 특정 종교 텍스트를 다양한 언어로 번역하거나,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 경전 제공, 성경의 주제별 요약 서비스, 이슬람의 기도시간 자동 알람, 불교 명상 콘텐츠 큐레이션 등 신앙 실천을 돕는 영역에서 상당한 역할을 한다. 특히 디지털 환경에서 신앙의 접근성을 높이고자 하는 시도는 AI의 데이터 분석 및 사용자 맞춤 기술과 잘 맞아떨어진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종교의 본질이 AI의 판단이나 알고리즘에 의해 오염되지 않도록 경계할 필요가 있다. AI가 생산한 종교 정보가 왜곡되거나 편향될 경우, 특정 교리를 오해하거나 신앙 공동체 내부에서 분열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교 기관과 기술 전문가, 윤리학자 간의 협력이 반드시 요구된다. ‘AI는 도구일 뿐이며, 믿음은 인간의 몫’이라는 선을 분명히 하고, 기술은 오직 신앙의 여정을 돕는 안내자일 뿐이라는 철학이 필요하다.

미래의 AI는 보다 고도화된 언어 능력과 감정 인식을 갖추게 될 것이며, 종교 문맥에서의 대화도 보다 정교해질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영성’, ‘신비’, ‘초월성’에 대한 응답은 여전히 기계가 넘을 수 없는 영역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므로 AI는 신앙의 ‘해석자’가 아니라, 인간 신앙인의 ‘도우미’로 남아야 한다. 신의 영역은 코드로 대체되지 않는다. 종교는 결국 인간이 신 앞에 서는 방식의 문제이기에, AI는 그 문 앞에서 멈춰 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