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 미래 기술 트렌드 분석

AI로 작성된 자서전 – 신뢰할 수 있을까?

dohaii040603 2025. 6. 7. 23:14

1. 자서전의 본질: ‘기억’과 ‘정체성’의 자기 서사

자서전은 단순한 인생 이야기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기억의 구성 방식이며, 자신에 대한 해석의 과정이며, 타인에게 자신을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라는 사회적 연출이자 심리적 고백이다.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고 사건을 선택하여 기록하는 자서전에는 사실 그 사람의 ‘기억’과 ‘정체성’이 농축되어 있다. 이때 기억은 시간의 순서에 따라 단순히 배열되는 것이 아니라, 의미와 감정을 중심으로 재구성되며 종종 무의식적 필터링을 거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실패의 순간을 짧게 적고, 성공의 순간을 크게 부각시키는 경향이 있다. 즉 자서전은 ‘있는 그대로의 삶’을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설명하고 싶은 방식’으로 과거를 해석하고 표현하는 서사물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AI가 자서전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정보를 정리하거나 글을 잘 쓰는 수준이 아닌, ‘정체성을 설계하고 해석하는 능력’을 요구한다. 문제는 현재의 AI가 ‘기억’이나 ‘정체성’이라는 개념을 실제로 체험하거나 내면화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AI는 데이터에 접근하고, 그 데이터를 구조화해줄 수는 있지만, 그 안에서 ‘감정의 진폭’이나 ‘무게 중심’을 판단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해, AI는 “무엇이 중요했는가”를 판단하기보다는 “무엇이 있었는가”를 기술할 뿐이다. 이는 자서전이라는 장르의 본질적 특성과 AI의 기능적 한계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는 지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조건에서 AI가 쓴 자서전을 ‘신뢰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AI로 작성된 자서전 – 신뢰할 수 있을까?


2. AI의 데이터 수집 방식과 감정의 모사 문제

AI가 자서전을 쓰기 위해서는 다양한 입력이 필요하다. 개인의 일기, SNS 기록, 이메일, 음성 로그, 사진 메타데이터 등 디지털 흔적들이 AI에게 ‘기억의 재료’로 주어진다. AI는 이를 시간순으로 정리하거나 주제별로 분류하여 일정한 서사를 구성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의 SNS 게시글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감정어(예: 기쁨, 분노, 슬픔 등)를 분석하여 ‘우울한 시기’, ‘자신감이 넘쳤던 시기’, ‘삶의 전환점’을 추론해내는 기술은 이미 일부 구현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은 AI가 마치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본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분석은 여전히 ‘표면적 패턴’에 불과하며, 감정의 복합성과 층위를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슬픈 표정으로 찍힌 사진이라고 해도, 그 순간은 친구들과 웃다 갑자기 울컥한 복합적 감정의 결과일 수 있으며, 감정 이면에 숨겨진 맥락은 본인만이 안다. 즉 AI는 감정을 ‘정량화’할 수는 있지만, ‘해석’하거나 ‘공감’할 수는 없다. 이때 AI가 자서전에서 인간의 ‘감정적 진실’을 대신 말할 수 있을까? 혹은 AI가 인간보다 더 객관적으로 인생을 기술했기에, 오히려 더 신뢰할 수 있는 문서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러한 의문은 AI 자서전의 목적에 따라 달라진다. 회고적 기록으로서의 정확한 연대기 작성이 목표라면 AI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정서적 공감이나 자아성찰의 도구로서 자서전을 원한다면, 인간의 기억 조작이나 감정의 층위를 포함하는 ‘불완전함’이 오히려 더 진실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3. 인간의 서사 vs 알고리즘의 구조 – 기억의 설계 권한은 누구에게 있는가

자서전은 단순한 과거 기록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자기 설계 도구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이 자서전을 쓰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남은 인생의 방향을 정립한다. 이는 서사적 정체성(narrative identity)의 형성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AI가 이 과정을 대신하게 되면, 과연 그 자서전은 ‘나의 것’일까? 아니면 ‘AI가 해석한 나’에 불과한 것일까? 즉 AI가 자서전을 대신 써주면, 그 글은 사용자 자신에게도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특히 최근에는 LLM(Large Language Model)을 기반으로 한 자서전 작성 보조 서비스가 등장하고 있다. 사용자가 키워드를 입력하거나 과거의 특정 사건에 대한 메모를 제공하면, AI가 이를 확대 재해석하고 정리해준다. 이때 AI는 논리적으로 깔끔한 문장을 만들어내지만, 글에서 ‘삶의 굴곡’이나 ‘서툰 감정 표현’은 종종 사라진다. 이런 문장은 때론 너무 깔끔해서 ‘거짓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즉 인간의 자서전이 가지는 서사의 불균형, 감정의 과잉, 무질서함은 AI에게는 잡음으로 보이지만, 독자에게는 그것이 오히려 더 인간적인 요소일 수 있다.

또한 AI가 어떤 사건을 강조하고 어떤 사건은 생략했는지, 그 기준이 투명하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이 기준은 사용자의 ‘가치관’이 아니라, 학습 데이터에 내재된 통계적 경향일 수 있으며, 이는 곧 개인의 기억이 알고리즘의 기준에 따라 ‘편집’되는 것을 의미한다. 자서전이야말로 가장 개인적인 글이어야 하는데, 이 글의 중심축이 AI로 옮겨간다면 우리는 어느 순간, ‘내가 주체인 줄 알았던 기억’조차 타자화된 형식으로 경험하게 될 수 있다.

4. 신뢰할 수 있는 AI 자서전을 위한 조건 – 공저자 모델과 인간의 검토

그렇다면 AI가 쓴 자서전이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할까? 첫째는 ‘공저자 모델’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인간과 AI가 협업하여 자서전을 작성하는 방식인데, 인간은 AI가 구성한 문장을 검토하고, 자신만의 언어로 수정하며, 중요한 에피소드나 누락된 감정을 직접 보완한다. 이렇게 하면 AI는 ‘기술적 편집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인간은 ‘정체성의 주체’로서 중심을 유지할 수 있다.

둘째는 AI가 제안한 문장이나 서사를 추적 가능하게 하는 ‘출처 설명 기능’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AI가 “이 시기는 당신에게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었다”고 기술했다면,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를 투명하게 보여줘야 한다. SNS 감정 분석 결과 때문인지, 특정 키워드의 빈도 때문인지 등을 설명해주는 ‘서사적 메타데이터’가 신뢰의 핵심이다. 이는 사용자로 하여금 자신의 삶에 대한 AI의 해석을 검토하고, 비판적으로 수용하게 만든다.

셋째는 AI 자서전에서 감정 서술과 관련된 문장은 반드시 인간의 재해석 과정을 거쳐야 한다. 감정은 언어로만 표현되지 않으며, 특히 과거의 감정은 현재의 정서 상태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따라서 AI는 초안을 제시하되, 최종적인 감정 서술은 인간이 직접 표현하도록 유도하는 인터페이스 설계가 바람직하다. 이는 자서전을 통한 치유, 반성, 성장이라는 심리적 기능을 유지하는 데도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자서전은 단순히 사실의 나열이 아닌 ‘의미의 서사’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AI가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자서전 도구는 ‘정답’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 삶을 더 풍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이 되어야 한다. 자서전을 쓰는 것은 결국 자신의 삶을 다시 구성하고, 타자에게 그 이야기를 건네는 행위이다. 그 중심에는 반드시 인간의 해석과 주체가 있어야 한다. AI는 그 여정을 함께하는 안내자이되, 결코 주인공이 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