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AI 작품, 경매장의 문을 열다: 2018년 크리스티의 충격
AI가 만든 작품이 처음으로 미술 경매 시장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계기는 2018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열린 ‘에드몽 드 벨라미의 초상화(Portrait of Edmond de Belamy)’ 낙찰 사건이었다. 이 작품은 프랑스 예술 집단 ‘오비어스(Obvious)’가 GAN(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이라는 생성형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활용해 만든 AI 회화로, 당시 경매 시작가는 약 7,000달러(약 800만 원)였으나 최종 낙찰가는 무려 432,500달러(약 5억 원)를 기록하며 세계적인 화제를 일으켰다.
이 사건은 단순히 하나의 예술적 실험을 넘어, 인간 예술가가 아닌 기계 알고리즘의 ‘작품’이 전통적인 미술 경매장이라는 보수적인 시스템에서 ‘진짜 예술’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했다. 경매를 주최한 크리스티는 “AI가 창작의 도구에서 하나의 창작 주체로 진입한 역사적 순간”이라 표현하며, 향후 AI 기반 예술 작품들이 미술품 시장에서 가지게 될 새로운 위상을 예고했다. 이후 소더비(Sotheby’s), 필립스(Phillips) 등 세계 유수의 경매사들이 AI 아트 경매를 준비하거나 시도하면서, ‘기계가 만든 예술’이라는 테마는 더 이상 낯선 이야기가 아니게 되었다.
2. AI 예술의 정체성과 저작권 이슈: 경매가 부여하는 ‘가치’란 무엇인가?
AI 작품이 미술 시장에서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질문이 있다. 바로 ‘이 작품의 창작자는 누구인가?’라는 철학적이며 법적인 물음이다. 실제로 2019년 이후 크리스티와 소더비에서는 AI 작품 경매가 반복되며 ‘저작권’과 ‘작가성’에 대한 다양한 논쟁이 촉발되었다. AI가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낸 이미지의 법적 소유권은 알고리즘을 설계한 프로그래머에게 있는가? 아니면 데이터를 제공한 아티스트에게 있는가? 혹은 작품을 낙찰받은 컬렉터가 소유권을 가진다고 해석해야 하는가?
이와 관련해 미국 저작권청(US Copyright Office)은 2022년 “완전히 AI가 생성한 작품은 저작권 보호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며 파장을 일으켰다. 하지만 반대로, AI의 알고리즘 결과물을 ‘창작자가 후편집하거나 방향성을 제시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인정될 수 있다는 판례도 존재한다. 이러한 경계는 미술 경매장에서 ‘AI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거래되는 작품이 과연 독립적인 가치를 지니는지, 아니면 하나의 기술적 도구로만 간주되는지에 대한 척도로 작용하게 된다. 경매가를 통해 ‘가치’가 수치화되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과 기계 사이의 창작 정의에 대한 불완전한 합의가 놓여 있다.
3. AI 작품, 예술적 기준을 바꾸다: 창작성과 컬렉터의 심리
AI 작품의 경매 낙찰은 단지 기술적 호기심에서 비롯된 일회성 사건이 아니다. 최근 몇 년 사이, AI 작품은 점점 더 예술성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이미지 생성 AI가 비주얼적으로 인간의 감각을 압도하거나, 예상하지 못한 구성과 패턴을 시도할 경우, 인간 작가도 도달하지 못한 독창성과 실험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Refik Anadol’은 AI를 활용한 데이터 기반 시각 예술로 MoMA와 협업하며 수백만 달러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그림을 넘어서 실시간 데이터 변화를 반영하는 ‘살아있는 예술’로 간주된다.
경매장에서도 이러한 AI 작품은 새로운 유형의 컬렉터층을 끌어들이고 있다. 디지털 자산에 익숙한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 컬렉터들은 블록체인 기반의 NFT 아트나 AI 기반 디지털 페인팅에 익숙하며, 이를 예술과 기술의 융합으로 바라본다. 또한 일부 투자자들은 AI 작품을 ‘기술 진보의 상징’ 혹은 ‘예측 불가능한 창작물’로 인식하며 고유한 수집 가치를 부여한다. 이는 단순히 아름다움을 추구하던 전통 미술 컬렉션과는 다른, 감정 대신 이념과 기술을 우선시하는 새로운 미학 기준의 출현을 보여준다.
4. 미래의 경매장은 인간과 AI의 협업 무대가 될까?
AI 예술의 위상이 높아지는 흐름 속에서, 미래의 미술품 경매장은 단순히 AI 대 인간의 경쟁 구도에서 벗어나, 협업의 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일부 예술가들은 AI 알고리즘을 창작 파트너로 삼아 공동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AI는 주어진 텍스트나 키워드를 바탕으로 작가의 스타일을 모방하거나 새로운 스타일을 제안하는 데까지 진화했다. 즉, AI는 더 이상 단순한 ‘도구’가 아닌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이러한 흐름은 경매 시스템 자체의 진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경매사들은 이제 디지털 환경에 적합한 NFT 기반 거래 시스템을 구축하거나, 실시간 데이터 기반으로 작품 가격을 유동적으로 조정하는 알고리즘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AI는 단순히 작품을 만드는 기술을 넘어, 시장을 분석하고 예측하며, 경매 진행 방식 자체를 혁신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곧 예술 작품뿐 아니라 예술 ‘시장’의 구조까지도 변화시키며, AI가 단순한 창작자에서 예술 생태계의 설계자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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