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모델 앙상블 대신 “멀티패스 추론”이 뜨는 이유
1. 멀티모델 앙상블의 약속과 현실: 정확도는 올랐지만 비용은 감당되지 않았다
머신러닝과 딥러닝 분야에서 ‘앙상블’은 오랫동안 성능 향상의 정석으로 여겨져 왔다. 서로 다른 모델을 동시에 사용해 결과를 결합하면 단일 모델보다 더 안정적이고 정확한 예측을 얻을 수 있다는 개념은 수많은 대회와 연구를 통해 검증되어 왔다. 이 흐름은 대규모 언어 모델이 등장한 이후에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서로 다른 LLM을 병렬로 호출하거나, 동일한 입력을 여러 모델에 던진 뒤 결과를 종합하는 방식이 바로 멀티모델 앙상블이다.
초기에는 분명 효과가 있었다. 특정 질문에 대해 한 모델이 놓치는 맥락을 다른 모델이 보완했고, 문체나 추론 방식의 차이가 결과의 다양성을 높여주었다. 특히 정답이 하나로 고정되지 않은 생성형 작업에서는 앙상블이 품질 향상에 기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 방식은 빠르게 한계에 부딪혔다. 가장 큰 문제는 비용과 지연시간이다. 멀티모델 앙상블은 모델 수만큼 추론 비용이 증가한다. 모델 하나를 호출하는 데 드는 비용이 이미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두 개, 세 개의 모델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은 운영 관점에서 지속 가능하지 않다. 특히 실시간 응답이 필요한 서비스에서는 지연시간이 누적되면서 사용자 경험이 급격히 저하된다.
또 다른 문제는 품질 제어의 어려움이다. 여러 모델의 출력을 결합하는 과정에서 어떤 결과를 최종 출력으로 선택할지에 대한 기준이 필요하다. 이 기준 자체가 또 하나의 복잡한 로직이 되며, 잘못 설계되면 오히려 일관성이 떨어지는 결과를 낳는다. 즉, 앙상블은 모델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대신 시스템 전체의 예측 가능성을 낮추는 역설적인 결과를 만들어냈다.
결국 멀티모델 앙상블은 “최대 성능”을 목표로 할 때는 매력적이지만, 운영 가능한 구조로는 점점 부담이 커졌다. 이 지점에서 업계는 질문을 바꾸기 시작했다. “모델을 더 늘리지 않고도, 추론 품질을 높일 수는 없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등장한 개념이 바로 멀티패스 추론이다.

2. 멀티패스 추론의 개념: 모델이 아니라 ‘사고 과정’을 여러 번 통과시킨다
멀티패스 추론은 이름 그대로 하나의 입력이 **여러 번의 추론 경로(pass)**를 거치도록 설계하는 방식이다. 중요한 점은 여기서 ‘멀티’의 대상이 모델이 아니라 추론 과정 자체라는 것이다. 동일한 모델을 사용하되, 서로 다른 관점이나 역할을 부여한 프롬프트, 단계적 추론 구조를 통해 결과의 품질을 점진적으로 개선한다.
이 방식의 핵심은 사고의 분해와 재구성이다. 단일 패스 추론에서는 모델이 한 번에 질문을 해석하고 답을 생성한다. 반면 멀티패스 추론에서는 첫 번째 패스에서 문제를 구조화하거나 핵심 요소를 추출하고, 두 번째 패스에서 이를 바탕으로 논리적 추론을 수행하며, 세 번째 패스에서 표현이나 형식을 다듬는 식으로 역할을 분리한다.
이 접근은 인간의 사고 과정과 유사하다. 우리는 복잡한 문제를 마주했을 때, 바로 답을 말하기보다는 문제를 분석하고, 가능한 해법을 검토한 뒤, 최종적으로 정리된 결론을 도출한다. 멀티패스 추론은 이 과정을 모델 내부가 아니라 시스템 레벨에서 명시적으로 구현하는 방식이다.
멀티모델 앙상블과 비교했을 때 멀티패스 추론의 가장 큰 장점은 비용 효율성이다. 동일한 모델을 여러 번 호출하더라도, 서로 다른 대형 모델을 병렬로 사용하는 것보다 비용을 훨씬 낮게 유지할 수 있다. 또한 패스 간의 흐름을 제어할 수 있기 때문에, 추론의 방향성과 품질을 더 정밀하게 조정할 수 있다.
또한 멀티패스 추론은 디버깅과 개선이 용이하다. 어느 단계에서 문제가 발생했는지 파악할 수 있고, 특정 패스의 프롬프트나 역할만 수정해도 전체 품질을 개선할 수 있다. 이는 앙상블에서 개별 모델의 내부 동작을 통제하기 어려운 것과 대조적이다.
이처럼 멀티패스 추론은 모델을 늘리지 않고도 “여러 번 생각하게 만드는 구조”를 통해 품질을 끌어올리는 방식이며, 이는 운영 현실과 품질 요구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데 매우 적합한 접근으로 평가받고 있다.
3. 왜 지금 멀티패스 추론인가: 비용, 통제력, 그리고 일관성의 문제
멀티패스 추론이 최근 들어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새로운 아이디어이기 때문이 아니다. 이는 현재 LLM 서비스가 직면한 세 가지 핵심 문제—비용, 통제력, 일관성—에 동시에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 비용 문제다. 대규모 언어 모델의 추론 비용은 시간이 지날수록 낮아지고 있지만, 사용량이 폭증하면서 전체 비용 부담은 오히려 증가하는 경우가 많다. 멀티모델 앙상블은 이 부담을 기하급수적으로 키운다. 반면 멀티패스 추론은 모델 수를 늘리지 않고도 품질을 개선할 수 있기 때문에, 비용 대비 효율이 훨씬 높다.
둘째, 통제력이다. 실제 서비스 환경에서는 “가끔 아주 좋은 답변”보다 “항상 일정 수준 이상의 답변”이 더 중요하다. 멀티모델 앙상블은 다양한 출력을 만들어내지만, 그만큼 결과의 편차도 커진다. 멀티패스 추론은 각 패스의 역할을 명확히 정의함으로써, 추론 과정 전체를 더 잘 통제할 수 있다. 이는 정책 준수, 톤 유지, 형식 일관성 측면에서 큰 장점이다.
셋째, 일관성이다. 사용자는 같은 유형의 질문에 대해 매번 다른 스타일이나 논리 구조의 답변을 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멀티패스 추론은 “생각 → 검증 → 정리”와 같은 고정된 흐름을 반복적으로 적용할 수 있어, 출력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 유리하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멀티패스 추론이 확장 가능한 설계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두세 개의 패스로 시작하더라도, 필요에 따라 검증 패스나 요약 패스를 추가할 수 있다. 이는 시스템이 성장하면서 요구사항이 복잡해질 때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구조를 제공한다.
이러한 이유로 멀티패스 추론은 단순한 트릭이 아니라, 대규모 LLM 서비스 운영을 위한 하나의 설계 패턴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는 “모델을 더 강하게”가 아니라 “추론을 더 똑똑하게” 설계하려는 흐름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4. 멀티패스 추론의 미래: 앙상블을 대체하는 새로운 표준이 될 수 있을까
멀티패스 추론이 모든 상황에서 멀티모델 앙상블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정한 전문 영역이나 극단적인 정확도가 요구되는 경우에는 여전히 여러 모델을 조합하는 방식이 유효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서비스 환경, 특히 대규모 사용자에게 안정적인 응답을 제공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멀티패스 추론이 훨씬 현실적인 선택이 되고 있다.
앞으로의 중요한 변화는 멀티패스 추론이 자동화된 형태로 발전할 가능성이다. 예를 들어, 입력의 난이도나 유형에 따라 패스 수를 동적으로 조절하거나, 특정 패스를 생략하거나 추가하는 구조가 등장할 수 있다. 이는 단일 모델을 사용하면서도, 사실상 상황에 맞는 맞춤형 추론 경로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또한 멀티패스 추론은 프롬프트 관리, 컨텍스트 관리, 캐시 전략과 결합되면서 하나의 통합된 운영 레이어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멀티패스 추론은 단순한 품질 개선 기법이 아니라, 시스템 전체의 사고 흐름을 설계하는 핵심 구조가 된다.
중요한 점은 멀티패스 추론이 기술적 유행이 아니라, 사고 방식의 전환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더 많은 모델을 쌓아 올리는 방식에서 벗어나, 하나의 모델을 어떻게 더 잘 사용하고, 더 깊이 사고하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중심이 되고 있다.
결국 멀티패스 추론이 뜨는 이유는 명확하다. 이는 비용을 통제하면서도 품질과 일관성을 확보할 수 있는, 현재로서는 가장 현실적인 해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흐름은 앞으로 LLM 기반 시스템 설계의 중요한 기준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