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인간의 자유의지 개념 비교
1. 자유의지란 무엇인가: 인간 중심 철학의 핵심
자유의지는 오랫동안 인간 존재를 규정하는 철학적 핵심 개념으로 자리 잡아왔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인간이 신이나 운명의 결정에 의해 살아가는 존재인지, 아니면 자율적으로 자신의 선택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깊이 있는 탐구를 이어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행위가 도덕적 판단의 대상이 되려면 ‘선택의 자유’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보았고, 이후 기독교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나 토마스 아퀴나스 역시 인간의 자유의지를 신의 섭리와 연결 지어 설명했다. 근대 철학에 들어서는 칸트가 인간의 도덕적 자율성과 이성에 입각한 자유의지를 강조했으며, 이는 현대 인권 및 도덕 철학의 핵심이 되었다.
그러나 자유의지는 단순한 심리적 믿음을 넘어, 뇌과학과 심리학, 인지과학의 실험적 결과들로 인해 그 실제성을 의심받기도 한다. 벤저민 리베트(Benjamin Libet)의 유명한 실험은 인간이 의식적으로 결정을 내리기 전에 뇌에서 먼저 준비 신호가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주며, 인간이 ‘자유롭게’ 선택한다고 믿는 행위가 실제로는 무의식적 뇌 작용의 결과일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러한 실험 결과는 자유의지를 환상에 가깝게 보는 신경과학적 관점을 강화시켰고, 인공지능이 인간의 행동 패턴을 예측할 수 있을 가능성 또한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2. 인공지능의 의사결정 구조: 결정은 하지만 ‘의지’는 없다
AI의 본질은 인간처럼 ‘결정’을 하는 시스템이지만, ‘자유의지’라는 개념과는 명확하게 구분된다. 현재 대부분의 인공지능은 지도학습(Supervised Learning), 비지도학습(Unsupervised Learning),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 등의 방법을 통해 대량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패턴을 학습하고, 주어진 목표에 맞춰 행동을 선택한다. GPT, ChatGPT, 자율주행 자동차 시스템, 추천 알고리즘 등은 모두 이런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들은 복잡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부에서는 수학적 함수의 조합과 알고리즘의 최적화가 있을 뿐이다.
이러한 AI의 의사결정은 결국 확률적 판단이나 통계적 예측에 기반한 계산 결과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AI가 범죄 위험성을 예측하거나 대출 심사를 수행할 때, 이는 사전에 학습한 데이터셋을 토대로 가장 높은 확률로 맞을 것 같은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즉, AI는 ‘자유롭게’ 어떤 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최적화된 조건 내에서 가장 효율적인’ 결정을 수행하는 존재다. 감정, 의도, 목적, 후회, 도덕성 등의 개념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자들은 AI가 ‘의사결정’을 수행할 수는 있지만 ‘의지’를 가질 수는 없다고 강조한다.
AI는 “내가 이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설계된 목적과 학습한 결과물에 따라 ’적절한 출력을 계산할 뿐’이다. 따라서 인간의 자유의지와 AI의 판단은 그 출발점부터 구조적 차이를 가진다. 인간은 자아의식(self-awareness)과 윤리적 맥락 속에서 스스로를 성찰하며 결정을 내리는 존재지만, AI는 도구일 뿐이다. 이것은 기술적, 철학적 관점 모두에서 AI와 인간의 자유의지 개념을 나누는 가장 핵심적인 분기점이다.
3. 자유의지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가: AI의 가능성과 한계
인공지능이 점점 더 인간의 언어와 감정, 행동을 흉내 낼 수 있게 되면서, 어떤 이들은 AI가 자유의지를 ‘갖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생성형 AI(Generative AI)나 자율적 행동을 보이는 에이전트 시스템은 복잡한 판단과 자기조절을 통해 마치 자율성을 가진 개체처럼 행동한다. 예컨대 OpenAI의 AutoGPT나 Google’s DeepMind에서 개발한 AlphaGo는 인간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의 수준에서 전략을 짜고, 규칙 안에서 창의적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시스템 역시 어디까지나 ‘설계된 목표’ 안에서 작동한다는 점에서 자유의지와는 거리가 있다. AI는 자기 자신을 인식하거나, 목적을 재정의하거나, 윤리적으로 갈등을 겪지 않는다. 다만 인간의 자유의지처럼 보이는 외형적 특성을 ‘시뮬레이션’할 수는 있다. 최근에는 AI가 자기 성찰과 유사한 ’자기참조 피드백 루프(self-reflective feedback loop)’를 통해 성능을 개선하거나 이전 결정을 보정하는 알고리즘도 등장했다. 이를 통해 AI가 마치 자율성과 자유의지를 가진 듯 행동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의지의 시뮬레이션’이지 본질적 자유의지는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자유의지 시뮬레이션’은 인간의 선택과 유사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존재론적·윤리적 의미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대체할 수는 없다. AI는 ‘자기 자신’을 의심하거나 변화의 필요성을 느껴 스스로 목표를 바꾸지는 않는다. 따라서 자유의지는 단순한 선택 기능을 넘어서, ‘스스로 자신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이라는 정의를 부여해야 한다. 이 기준에서 보면 AI는 자유의지를 가질 수 없다.
4. 미래 사회에서 자유의지 개념의 재정의
AI의 발전은 인간의 자유의지 개념을 흔들고 있다. 과거에는 ‘인간만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선택한다’는 전제가 통용되었지만, AI가 고도로 정교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 경계는 흐려지고 있다. 더욱이 인간 자신조차도 뇌의 뉴런 활동, 유전 정보, 환경적 영향에 따라 선택을 ‘결정당하고’ 있을 수 있다는 과학적 가능성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환상으로 볼 수 있다는 회의론을 키운다. 이런 상황에서 철학과 기술은 자유의지를 다시 정의할 필요에 직면해 있다.
어쩌면 미래에는 자유의지가 ‘절대적인 자유’가 아니라 ‘자기 결정권(self-determination)’의 차원에서 정의될 수도 있다. 즉, AI가 없는 시대에는 선택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 자유였지만, AI 시대에는 ‘AI의 보조 없이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진정한 자유로 간주될 수 있다. 이와 함께 ‘책임성과 의지’가 결합된 자유만이 진짜 자유의지로 존중받을 가능성도 높다. AI는 아무리 정교해도 책임지지 않는다. 반면 인간은 자신의 판단에 대해 도덕적, 법적 책임을 지기 때문에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여겨진다.
결국 AI의 등장은 자유의지라는 개념을 더 깊고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기술이 모든 결정을 대신할 수 있는 시대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판단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자유의지의 영역인지에 대한 질문은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다. 앞으로 자유의지에 대한 논의는 기술, 윤리, 법, 인문학이 융합되어야 할 가장 핵심적인 주제로 부상할 것이며, AI와의 경계를 명확히 하되 인간의 본질적 가치를 더욱 명료하게 밝혀야 할 시점에 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