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 미래 기술 트렌드 분석

AI와 인간 욕망 – 데이터가 예측할 수 있는가?

dohaii040603 2025. 6. 4. 01:50

1. 인간 욕망의 본질: 데이터로 파악 가능한가?

인간의 욕망은 단순히 ‘원한다’는 감정 이상이다. 그것은 기억, 무의식, 문화적 배경, 사회적 상호작용, 유전적 성향까지 복합적으로 결합된 구조물이다. 철학자 자크 라캉은 인간의 욕망이 ‘결핍에서 비롯된다’고 보았으며, 프로이트는 그것을 억압된 무의식의 발현으로 보았다. 다시 말해, 인간은 본능과 경험, 기억의 총체로부터 특정한 욕구를 느끼며, 그 욕망은 유동적이고 끊임없이 진화한다. 이러한 비선형적이고 다층적인 구조가 과연 정량적 데이터로 해석 가능할까? 현재 AI는 소비자의 행동 이력, 클릭 패턴, 소셜미디어에서의 표현 등을 통해 욕망의 징후를 탐지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결정적인 한계가 있다. 데이터는 인간의 ‘표현된’ 욕망을 반영할 뿐이며, 숨겨진 욕망, 언어로 표현되지 않은 감정, 혹은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한 무의식적 동기까지는 포착하지 못한다. 예컨대, 한 소비자가 갑작스레 붉은 립스틱을 구매했다면, AI는 계절, 광고, 구매 이력 등을 근거로 추천 알고리즘을 업데이트할 수 있지만, 그 구매의 진짜 배경—자존감 회복, 실연 후의 감정적 변화, 특정 타인과의 상호작용 등—은 포착하지 못한다. 이는 데이터 기반 모델이 여전히 표면적인 행동과 명시적 정보에만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AI와 인간 욕망 – 데이터가 예측할 수 있는가?


2. AI의 욕망 분석 기법: 지금까지의 진보와 한계

AI가 욕망을 해석하기 위한 핵심 기술은 자연어 처리(NLP), 이미지 분석, 음성 감정 인식, 그리고 강화학습 기반 예측 시스템이다. 특히, BERT나 GPT와 같은 대규모 언어모델은 인간의 언어적 욕망 표현을 상당히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사용자의 채팅 내역, 이메일, SNS 포스팅, 검색어 이력 등을 바탕으로 ‘지금 이 사람이 무엇을 원할지’에 대한 예측 모델을 구성하는 것은 더 이상 먼 미래의 기술이 아니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의 추천 알고리즘은 단순한 선호를 넘어 사용자의 기분 상태, 감정 경향, 몰입 패턴까지 고려한다. 그러나 문제는 ‘욕망’이 단지 현재 데이터로 추정 가능한 ‘현재의 감정 상태’나 ‘소비 패턴’ 이상이라는 점이다. AI는 반복된 행동이나 언어를 학습해 추론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종종 논리나 패턴과 무관하게 나타난다. 예컨대, 오랫동안 관심 없던 주제에 갑자기 몰입하거나, 일상의 흐름을 파괴하는 충동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이런 예외적 행동은 기존 데이터 기반 AI에게는 ‘노이즈’ 혹은 ‘이상치’로 분류되기 쉽다. 하지만 이 ‘이상치’ 속에야말로 진짜 욕망의 핵심이 숨어 있을 수 있다. AI의 현재 구조는 평균화와 범주화를 통해 개별성의 섬세함을 희생시키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인간의 욕망이라는 유기적 실체를 온전히 다룰 수 있으려면, AI는 예외성, 돌발성, 그리고 감정의 흐름까지 함께 학습하고, ‘예측 가능한 오차’ 너머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새로운 프레임이 필요하다.

3. 욕망 예측의 윤리적 과제와 사회적 파장

AI가 인간의 욕망을 예측하고, 심지어 조작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을 때 우리는 심각한 윤리적 질문에 마주하게 된다. AI가 추천하는 콘텐츠, 광고, 상품은 단순히 사용자의 필요를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무엇을 원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이는 자유의지의 위기이자, 시장 주도적 기술이 인간 감정과 욕망을 상품화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알고리즘이 특정 감정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특정 제품을 지속적으로 노출시킨다면, 이는 그 사람의 감정을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욕망은 더 이상 자율적인 내면의 흐름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촉진한 외부 입력의 결과가 된다. 이와 같은 욕망 조작은 정치, 교육, 심지어 인간관계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치적 극단주의가 소셜 미디어 알고리즘에 의해 강화되듯, 인간의 깊은 욕망이 시장이나 정치 시스템에 의해 증폭되거나 왜곡될 위험도 존재한다. 윤리적 설계 원칙, 감정 조작에 대한 법적 규제, 사용자 알 권리의 보장 등은 이 문제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이보다 훨씬 느리게 따라가고 있다. 욕망을 예측하는 AI가 인간의 판단에 끼치는 영향력을 분석하는 ‘윤리적 알고리즘 해석학’이 시급히 요구되는 시대다.

4. AI와 인간 욕망의 공진화 가능성

그렇다면 AI와 인간의 욕망은 필연적으로 대립적일 수밖에 없을까? 혹은 우리는 AI를 통해 욕망을 더 잘 이해하고, 더 나은 삶의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일부 학자들은 AI를 인간 내면의 ‘거울’로 바라본다. AI는 인간의 욕망을 1차원적으로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욕망을 인식하게 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AI가 반복적으로 추천하는 콘텐츠나 행동 패턴을 통해 우리는 ‘내가 실제로 이런 취향을 가지고 있었구나’라는 식의 자기 인식을 하게 된다. 이처럼 AI는 인간의 무의식을 의식화시키는 도구로 작동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감정 기반 AI, 심리학적 메타러닝, 인간-기계 공감 인터페이스 등의 발전은 욕망을 단순히 ‘예측’이 아닌 ‘공감’과 ‘소통’의 대상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이런 방향성은 ‘AI는 도구일 뿐이다’라는 고전적 입장에서 벗어나, AI를 욕망의 해석자 혹은 공동 창작자(co-creator)로 이해하는 관점을 가능케 한다. 미래에는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보다 깊이 이해하고, 그것을 실현 가능한 목표로 전환하도록 돕는 ‘욕망 인터페이스’로서의 AI가 등장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AI가 단순한 통계 모델이 아닌, 인간 심리와 사회 맥락을 통합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존재로 진화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기술적 진보뿐 아니라, 철학, 윤리, 심리학, 문학까지 다학제적 협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