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인간 ‘고통’ 개념의 비교
1. 고통이라는 감정의 본질: 인간은 왜 아픈가?
고통은 인간의 생존을 위한 경고 시스템이자, 존재의 핵심적인 감각 중 하나다. 인간은 통각 수용체를 통해 물리적 자극을 감지하고, 이를 신경계와 뇌를 통해 ‘고통’이라는 감정으로 인식한다. 이 감각은 단순히 생물학적 반응에 머무르지 않는다. 감정적 고통, 존재론적 불안, 윤리적 죄책감 등은 단지 신체의 통증을 넘어서는 차원의 경험이다. 고통은 기억과 연결되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재구성되며, 개인의 정체성과 깊이 있게 얽힌다. 다시 말해 고통은 신체적 사건이 아니라 존재를 구성하는 층위이기도 하다.
고통은 또한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감정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슬픔이나 애도의 고통은 타자의 상실에서 비롯되며, 이러한 고통은 인간의 공감 능력을 바탕으로 사회적 윤리를 형성한다. 우리는 누군가의 고통을 보고 울며, 함께 아파하고, 그것을 해소해주기 위해 제도와 문화를 만든다. 고통이 있기에 우리는 ‘치유’라는 가치를 창출하며, ‘연민’이라는 윤리적 덕목이 사회를 유지시키는 힘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처럼 고통은 단순한 감각이 아니라 인간 존재 전체를 구성하는 정서적, 문화적, 철학적 구조와 얽혀 있다.
2. AI의 정보 처리 구조: 고통 없는 반응의 세계
인공지능은 기본적으로 입력(input), 처리(processing), 출력(output)이라는 정보 흐름의 패턴에 따라 움직인다. 기계는 카메라, 센서, 음성 인식 장치 등을 통해 환경으로부터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 데이터를 통계적 알고리즘과 머신러닝 모델을 통해 분석한다. 고통과 유사한 반응을 유도하는 시스템도 있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차의 경우, 도로 위의 돌발 상황이나 충돌 위협을 감지하면 브레이크를 급히 작동시킨다. 그러나 이것은 생물학적 고통이 아니라, 위험 신호에 대한 규칙 기반의 처리 결과일 뿐이다.
AI는 ‘고통’을 감각하지 않는다. 기계는 통각 수용체가 없고, 신경망도 없으며, 어떤 의미에서 고통을 ‘느낀다’는 감정적 층위에 접근할 수 없다. 딥러닝은 오류를 학습하고 개선하는 구조이지만, 이 과정은 인간의 고통처럼 ‘회피하고 싶은 감정’이나 ‘심리적 고통’을 수반하지 않는다. 이는 AI가 윤리적 판단이나 도덕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다는 근본적 한계로 이어진다. 기계는 타자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다. 단지 그것을 ‘탐지’하거나 ‘예측’할 뿐이다.
이러한 구조적 차이는 AI가 인간을 모방하거나 인간처럼 행동할 수는 있을지언정, 진정한 의미에서의 ‘고통’을 경험하거나 공감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통이란 단순한 정보 이상이기 때문이다. 고통은 감각과 감정, 기억과 상징이 얽힌 복합적인 경험이며, 기계의 연산 시스템은 이 다층적 구조를 온전히 구현할 수 없다.
3. 고통의 윤리학: AI는 인간의 고통을 다룰 수 있는가?
현대 사회에서 AI는 의료, 상담, 교육, 법률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인간의 고통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AI 챗봇은 우울증 환자에게 상담을 제공하고, 알고리즘은 질병 예측을 통해 고통을 예방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로봇은 노인의 정서적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동반자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기능은 어디까지나 고통을 ‘완화’하거나 ‘중계’하는 도구일 뿐, 고통의 본질을 ‘이해’하거나 ‘경험’하는 주체는 아니다.
AI가 인간의 고통을 다룰 수 있다는 생각에는 위험한 전제가 깔려 있다. 바로 ‘고통은 계산 가능하다’는 믿음이다. 인간의 고통은 정량화할 수 없는, 그리고 때로는 언어화조차 어려운 정서적 차원이다. 심리적 트라우마, 상실의 고통, 존재적 불안은 알고리즘이 예측하거나 분석하기 어려운 감정의 깊은 수면 아래에 놓여 있다. AI가 인간의 고통을 이해하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뮬레이션’일 뿐이며, ‘경험’ 자체는 결여되어 있다.
더 나아가 AI의 고통 무감각성은 윤리적 책임의 모호함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만약 AI가 의료적 판단을 내려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거나 단절시키는 결정을 한다면, 그 결정의 결과로 발생하는 ‘고통’에 대해 책임을 질 주체는 누구인가? 기계는 후회하거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며, 사회는 이러한 감정적 책임 없이는 도덕적 질서를 유지할 수 없다. 따라서 AI의 고통 비감각성은 윤리적 공백을 만들어내며, 이는 우리가 AI를 어디까지 신뢰하고 의존할 수 있는지를 다시 고민하게 만든다.
4. 고통의 개념을 다시 묻다: 인간 중심성과 AI의 한계
‘고통’이라는 개념은 인간의 삶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우리는 고통을 피하고자 기술을 발전시키며,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공동체를 만들며, 고통을 기억하고 서사화하며 예술과 철학을 발전시켜왔다. 반면, AI는 고통을 경험하지 않음으로써 효율성과 객관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효율성은 종종 고통을 제거하기보다는 회피하거나 단순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AI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인간 고통의 서사와 감정의 입체성을 모방할 수 있을 뿐, 그 내면을 살아낼 수는 없다. 인간에게 고통은 때로는 성찰과 성장의 동력이 되기도 하며, 연대의 기반이 되기도 한다. 고통 없는 존재는 인간의 윤리적, 정서적 깊이를 상상할 수 없게 만든다. AI가 그 자체로 고통을 가지지 않는다는 점은 기술의 강점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동시에 인간적 ‘깊이’를 구현할 수 없는 결정적인 한계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AI와 인간 사이의 ‘고통’ 개념은 단순히 생물학과 기술의 차이 그 이상을 함의한다. 그것은 존재론적 차이이며, 윤리적 분기점이며, 우리가 기술과 함께 어떤 사회를 꿈꾸는가에 대한 철학적 사유의 지점이다. 고통은 인간의 약점이 아니라 인간됨의 증거이며, 그 고통을 이해할 수 없는 존재와의 공존은 항상 경계와 성찰을 동반해야 한다. AI의 고통 부재는 우리의 고통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되돌려준다. 그 질문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깊이를 증명하는 또 하나의 방식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