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윤리와 AI 판단 충돌 사례
1. 서론 – 신앙의 명령과 알고리즘의 명령: 충돌은 피할 수 없는가?
21세기 인공지능(AI)은 인간의 판단을 모방하거나 보완하는 수준을 넘어서, 실제 의사결정에 깊이 개입하는 단계에 도달하고 있다. 의료, 법률, 국방, 금융, 돌봄 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AI는 ‘합리성’과 ‘효율성’을 내세워 인간을 대신하는 역할을 수행 중이다. 하지만 이러한 판단이 모든 맥락에서 수용 가능한 것은 아니다. 특히 윤리적 판단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AI의 결정은 종종 전통적인 윤리 체계, 특히 종교적 윤리와 충돌하는 사례들을 발생시킨다.
예를 들어, 생명과 죽음을 다루는 의료 분야에서는 기계가 판단한 ‘가망 없음’이라는 결론이, 신앙인의 ‘기적의 가능성’이라는 신념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또 전쟁 무기에서의 자율적 타격 판단은 종교적 교리에 입각한 평화주의 원칙을 위협할 수 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종교는 인간의 자유의지, 고통의 의미, 죄의식, 회개의 가능성과 같은 인간 중심의 메타 윤리를 포괄하지만, AI는 오직 입력값과 통계적 규칙에 따라 ‘결정’을 내릴 뿐이다. 이 차이가 수많은 충돌의 핵심 원인이 된다. 본문에서는 이러한 충돌이 실제로 어떻게 발생하며, 각각 어떤 철학적 문제와 사회적 질문을 낳고 있는지를 사례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 생명윤리 분야의 충돌 – AI의 ‘치료중단 판단’과 기독교의 ‘생명 경외’
가장 대표적인 충돌 사례는 생명윤리 분야에서 발생한다. 특히 AI 기반의 의료보조 시스템이 중환자의 생존 가능성을 분석하여 ‘치료 중단’을 제안하는 상황이 그러하다. 최근 미국의 몇몇 병원에서는 AI가 예후 데이터를 분석하여 환자의 회복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판단될 경우, 의료진에게 ‘적극적 연명치료 중단’을 제안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하지만 이러한 판단은 종교적 신념과 극명하게 충돌하는 지점을 만든다.
가톨릭 교리는 인간 생명을 신의 선물로 간주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자의적으로 생명을 포기하거나 중단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비록 의료진이나 가족이 환자의 상태를 비관적으로 바라보더라도, ‘기적’이라는 개입 가능성을 믿는 신앙인들에게 AI의 판단은 ‘인간 생명을 수치로 환산한 계산 행위’에 불과하게 보인다. 불교나 힌두교에서도 생사의 흐름은 업(karma)과 윤회에 따라 결정되며, 그 과정을 인위적으로 차단하거나 중단하는 것은 매우 중대한 윤리 위반으로 간주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AI 판단이 병원의 정책이나 보험 체계와 연결되면서 ‘비용 대비 생존 가능성’이라는 냉정한 효율성의 논리에 종속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경제적 생존 가치’가 종교적 생명의 존엄성을 압도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는 종교 공동체가 강하게 반발하는 근본적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갈등은 단순히 의료적 의사결정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존재 가치, 고통의 의미, 죽음 이후의 전망까지 포함하는 깊은 신학적·인문학적 충돌로 번진다.
3. 정의와 복수의 딜레마 – AI의 공정성 알고리즘과 종교적 자비 정신의 대립
AI는 법률 분야에서도 점점 더 많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 일부 주에서는 재범 위험도를 평가하여 가석방이나 보석 여부를 결정하는 알고리즘이 실제로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시스템은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통계적으로 범죄 가능성을 예측하고, 그 결과를 법관에게 제공한다. 하지만 이 알고리즘이 ‘공정성’이라는 이름 아래 사람을 숫자로만 판단하는 방식은 종교적 윤리, 특히 ‘자비’와 ‘용서’의 가르침과 충돌한다.
기독교는 회개한 죄인에게 용서와 새로운 기회를 부여하라고 가르친다. 불교 또한 ‘악업도 정화될 수 있다’는 원리를 기반으로, 업장을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중시한다. 하지만 AI는 과거 범죄 이력이나 주거 환경, 소득 수준 등 통계적 변수에 따라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고 차별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이는 한 개인의 회복력, 내면적 변화 가능성, 영적 갱신을 인정하지 않는 ‘기계적 판단’이며, 종교계에서는 이를 ‘윤리적 냉소주의’로 비판하기도 한다.
실제로 2016년 미국의 한 흑인 피의자가 이전 전과 때문에 높은 재범 위험 점수를 받아 보석이 기각된 사례는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이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 알고리즘은 백인보다 흑인에게 불리하게 작동하는 편향된 데이터에 기반해 있었다. 이 사건은 AI 윤리가 인간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을 강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종교의 윤리관이 더 폭넓은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를 요구하는 이유를 부각시킨다. AI의 판단은 ‘가능성’을 제거하지만, 종교는 그 가능성 속에서 ‘기회’를 본다.
4. 군사 및 안보 영역 – 자율무기 AI와 비폭력 신념의 대립
종교적 윤리와 AI 판단의 충돌은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군사 분야에서 드러난다. 특히 자율무기 시스템(LAWS: Lethal Autonomous Weapon Systems)의 등장과 확산은 인간 생명에 대한 결정권을 기계에게 넘겨주는 문제로 이어진다. AI가 적군의 표정, 위치, 무장 정도 등을 분석해 ‘공격 여부’를 스스로 판단하는 이 시스템은, ‘윤리적 킬러’라는 역설적인 개념을 낳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기술은 종교적 평화주의, 특히 기독교의 ‘살인 금지 계율’이나 불교의 ‘불살생’ 원칙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전쟁이 발생하더라도 적을 죽이는 행위는 반드시 인간이 깊은 윤리적 고뇌와 판단을 거친 후에 행해야 하며, 이 책임은 회피할 수 없는 인간의 몫이다. 그런데 AI 무기는 ‘명령 없는 살해’를 기술적으로 가능하게 만들며, 신앙의 관점에서는 ‘신의 뜻을 대리하는 판단자’로 기계를 우상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더구나 AI 무기의 작동 기준은 학습된 데이터에 기반하며, 이 기준이 특정 문화나 종교적 차이를 고려하지 못할 경우, 오판에 의한 민간인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예를 들어, 무장과 복장의 문화적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 채 ‘위협 대상’으로 분류하여 공격하는 사례는 이미 실험 단계에서 보고된 바 있다. 이는 종교적으로 무고한 자의 생명을 앗아가는 중대한 윤리 위반이며, 해당 공동체 전체에 대한 폭력으로 간주된다.
종교계에서는 이러한 기술의 확산에 대해 ‘인간의 폭력성조차 기술로 미화하는 위험’이라 경고하며, ‘정의로운 전쟁’조차 기술에 위임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표명하고 있다. 기술은 도구일 뿐이며, 그 도구가 수많은 생명을 판단하고 결정할 권한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