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 미래 기술 트렌드 분석

‘표절’의 기준은 누구의 몫인가? – AI 창작과 윤리 논쟁

dohaii040603 2025. 6. 21. 21:02

1. 창작의 의미가 바뀌는 시대, AI는 창작자인가 도구인가?

21세기 들어 디지털 기술은 창작의 풍경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았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생성형 인공지능의 폭발적인 발전은 ‘창작자’의 정의를 재구성하고 있다. Midjourney, ChatGPT, DALL·E, Runway와 같은 AI 툴들은 수십 초 만에 이미지, 영상, 글, 음악을 만들어내며, 이전까지 수작업에 의존하던 창작 과정을 자동화하거나 지원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예술가, 작가, 디자이너 등 기존 창작자들의 역할이 위협받고 있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기술이 새로운 창작의 가능성을 열어주며, 누구나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는 시대를 실현시키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AI가 만든 콘텐츠는 과연 창작물인가?’, ‘AI의 결과물을 사용하는 사람은 창작자인가?’, ‘AI가 기존 데이터를 학습해 만든 결과물은 표절인가?’ 같은 복잡한 질문이 따라온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AI에게 “고흐 스타일로 개를 그려줘”라고 지시해서 얻은 결과물을 자신의 작품으로 발표했을 때, 이것은 정당한 창작일까? 아니면 고흐의 화풍을 모방한, 무단 차용된 표절일까? AI는 수많은 기존 예술작품, 텍스트, 멜로디 등을 학습 데이터로 삼고 결과물을 생성하기 때문에, 단순히 ‘새로운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이처럼 AI는 창작의 주체이자 수단으로서, 인간 창작자와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다.

‘표절’의 기준은 누구의 몫인가? – AI 창작과 윤리 논쟁


2. 표절의 기준, 인간 중심 규범은 AI 시대에도 유효한가?

AI가 만들어낸 콘텐츠가 기존 창작물을 ‘모방’하거나 ‘재구성’하는 성격을 띠는 만큼, 표절이라는 개념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표절은 타인의 저작물을 무단으로 가져와 자기 것처럼 사용하는 행위를 뜻하며, 법적 기준뿐 아니라 윤리적 판단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하지만 AI가 학습한 데이터 자체가 공개된 콘텐츠에서 비롯되며, 결과물 또한 비슷한 유형의 스타일을 자동으로 생성하는 특성이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표절 개념만으로 이를 판단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특히 AI가 수천만 개의 문서나 이미지, 음원을 한꺼번에 학습하여 만든 결과물이 특정한 원본과 유사하다는 이유만으로 표절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다.

예를 들어, AI 음악 생성 도구를 활용해 만든 곡이 유명 작곡가의 스타일과 유사하다고 하여도, 정확히 어느 정도의 유사성이 ‘표절’로 인정되는지에 대한 기준은 불명확하다. 이 때문에 일부 법조계 전문가들은 “표절의 판단은 창작자의 의도와 맥락, 결과물의 고유성, 유사 정도 등의 다층적 요소를 감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AI는 의도를 갖고 창작하지 않으며, 사용자의 요청에 따라 통계적으로 ‘가능성 높은 결과’를 제시하는 도구일 뿐이다. 결국 이러한 판단의 책임은 창작한 사람이라기보다는, AI를 활용한 인간 사용자 또는 AI 개발자에게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책임 귀속조차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표절 기준은 여전히 혼란 속에 있다.

3. 법적 판단을 넘어서는 윤리 문제: 창작자의 권리 vs 대중의 접근성

AI 창작물에 대한 법적 판단은 여전히 국가마다 상이하다. 미국은 AI가 생성한 콘텐츠에 대해 저작권을 부여하지 않으며, 유럽연합은 ‘공정한 데이터 활용’과 ‘창작자의 보호’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한 법안을 논의 중이다. 한국 역시 AI가 만든 결과물에 대한 저작권 귀속 문제를 두고 법적 해석이 분분하다. 현행 저작권법은 ‘인간에 의해 창작된 저작물’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AI가 단독으로 만든 이미지나 음악에는 저작권이 인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를 활용한 사람의 기여 정도, 편집 범위, 구체적인 지시 내용 등에 따라 ‘인간의 창작성이 개입되었는지’를 중심으로 판단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런 법적 틀만으로는 AI와 인간이 공동 창작을 했을 경우의 복잡한 현실을 모두 포괄하기 어렵다. 특히 AI가 기존 작품을 데이터로 학습했을 때, 원작자의 권리를 어디까지 보호해야 하는지도 불분명하다. 예컨대 AI가 수천 개의 사진을 학습해 만든 이미지가 특정 사진작가의 작품을 연상시킬 경우, 해당 작가는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단지 법적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창작자는 자기 작업의 고유성을 지키고자 하고, 반대로 대중은 ‘무료로’, ‘빠르게’, ‘비전문가도’ 콘텐츠를 만들고 소비하고자 한다. 이처럼 창작자 권리 보호와 기술 민주화 사이의 긴장은, 단순히 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윤리적 고민을 야기한다. 이는 창작 생태계 전반의 신뢰 기반을 흔들 수 있는 중요한 쟁점이다.

4. 창작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합의: 인간·AI·법이 조율해야 할 과제

결국 AI 창작과 표절 논쟁은 기술 그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인간이 만든 제도와 규범이 기술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이에 따라 우리는 ‘표절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부터 다시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창작의 본질이 창의성이라면, AI가 창의적인 결과를 내놓을 수 있는가? 창작의 주체가 인간이 아니라면, 그 결과물에 대한 윤리적, 법적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그리고 기존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면서도, AI를 활용한 창작의 자유는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우리 사회는 빠르게 답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단순한 법률 개정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인식 전환과 협의된 합의 과정이다. AI 개발자들은 기술 설계 단계에서부터 데이터 수집의 윤리성을 고려해야 하며, 정책 입안자들은 AI 생성물에 대한 저작권, 사용 범위, 책임 소재 등을 명확히 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동시에 창작자들은 AI를 배척할 것이 아니라, 창작의 도구로 받아들이되 자신의 고유한 창작 영역을 더욱 분명히 할 전략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일반 대중은 AI 콘텐츠를 단순히 ‘편리한 도구’로만 소비하기보다는, 그것이 기존 창작자의 권리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창작의 윤리를 둘러싼 이 새로운 전환점은 기술만이 아니라, 우리가 기술을 대하는 태도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