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서 ‘실수’는 창조인가 오류인가 – AI 창작의 한계
1. 예술 속 ‘실수’의 의미: 인간 창조성의 예외적 동력
예술사에서 ‘실수’는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 때로는 창조적인 발화의 시점으로 작용해왔다.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들이 무심코 번진 붓터치에서 새로운 형태를 발견하거나, 재즈 연주자들이 순간적으로 놓친 음정을 즉흥적인 화성으로 전환시키는 경우처럼 말이다. 이처럼 실수는 인간의 감정, 사고, 무의식이 얽힌 복잡한 창조의 요소로 간주된다. 실수는 완벽한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우연성과 의도되지 않은 순간에서 비롯되기에 더 인간적이고 생생하다. 이는 기존 예술 문법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미감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현대 예술가들도 실수를 창의적인 자극으로 삼는다.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은 통제 불가능한 붓질과 물감의 흐름 속에서 실수를 예술로 끌어올렸다. 사진 작가들도 렌즈의 초점 흐림, 과다 노출 등의 ‘실수’에서 예기치 않은 미학을 발견하곤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예술에서 실수는 단순한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혁신의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결국 실수는 ‘인간다움’의 증거이며, 예술의 본질적 조건 중 하나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인간 창작자에게 허용된 ‘실수의 미학’이다. AI 창작은 과연 이런 실수를 재현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AI가 만들어내는 ‘실수’는 오류인가,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창조인가? AI가 만드는 예술에서 인간적인 ‘실수의 가치’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이는 단순히 기술적 문제를 넘어 창작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2. AI 창작 시스템의 구조적 완벽성과 실수의 부재
AI 기반 창작 시스템, 특히 딥러닝을 활용한 이미지 생성 모델이나 자연어 생성 모델은 방대한 데이터에 기반해 ‘정답에 가까운’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시스템은 실수를 줄이기 위해 끊임없이 최적화된다. 결과적으로 AI의 창작물은 논리적이고 일관되며 오류율이 낮은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바로 이 완벽함이 예술이라는 맥락에서 아이러니한 한계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AI가 생성한 회화 작품은 수학적 구도나 색상 조화 면에서 인간의 기준을 훨씬 상회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작품이 감정의 파동이나 충격, 우연성에서 나오는 창조적 긴장을 담아내기는 어렵다. 이는 AI가 구조적으로 ‘실수’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AI가 오류를 범하면 시스템은 이를 학습 실패나 버그로 인식하고 수정하려 한다. 이 같은 구조는 인간의 창작에서 의미 있게 작용했던 ‘불완전성’이라는 창조적 요소를 AI가 되살리기 어렵게 만든다.
또한 AI는 ‘왜’ 실수했는지를 자각하지 못한다. 인간은 실수의 맥락을 인식하고 그것을 확장하거나 고의적으로 반복할 수 있지만, AI는 실수를 인지하는 메커니즘이 없다. 예컨대, 언어 생성 AI가 엉뚱한 문장을 만들어냈을 때, 그것이 해학인지 오류인지를 구분하지 못하며, 그 결과를 재창조하거나 의미화하지 못한다. 결국 AI는 창작의 흐름에서 우연성, 불일치, 예외성과 같은 ‘실수 기반 창조성’을 구현하는 데 근본적인 한계를 가진다.
3. AI의 ‘창조된 실수’ 실험들 – 인간성과의 거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실험적 시도들은 AI에게 실수처럼 보이는 패턴을 의도적으로 부여해 인간적인 창조성을 흉내 내려 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GAN(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을 활용한 예술 실험들이 있다. GAN은 생성자와 판별자의 대립 속에서 결과물을 산출하며, 초기 학습 단계에서 다소 이상하고 불완전한 이미지들을 생성한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불완전한 결과물’은 인간 관점에서 오히려 독창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GAN 기반 AI 화가인 Obvious는 2018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에드몽 드 벨라미’라는 초상화를 43만 달러에 판매했다. 이 작품은 인간처럼 사실적인 얼굴이 아닌, 형태가 흐려지고 경계가 모호한 인물상이었는데, 바로 그 불분명함이 예술성과 창조성을 자극했다. 관객들은 이 작품을 ‘AI의 실수’가 만든 환상적 이미지로 해석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실수’가 AI의 의도나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단순한 알고리즘 미완성의 부산물이라는 점이다.
음악 분야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관찰된다. AI 작곡 도구인 AIVA나 Jukebox는 기존 작곡가들의 스타일을 학습해 곡을 만들어낸다. 때때로 코드 전개나 화성이 미묘하게 어긋나면서 ‘이질적이고 새로운’ 사운드를 내기도 한다. 일부 평론가들은 이를 새로운 장르나 감성으로 받아들이지만, 여전히 그 창작의 주체가 없는 ‘비인격적 산출물’이라는 한계는 남아 있다. 인간은 실수를 실험으로 전환할 수 있지만, AI는 실수를 ‘실패’로만 간주한다는 점에서 두 존재의 창조 행위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4. 예술 창작의 미래: 인간-기계 협업과 실수의 재정의
AI가 예술을 대체할 수는 없다는 관점은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 ‘실수’라는 개념을 창조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존재는 인간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래의 예술은 인간과 AI가 협력하는 새로운 형태로 진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때 중요한 것은 AI가 실수를 학습하거나 생성하는 방식이 아니라, 인간이 AI의 예외적 결과물에서 새로운 감각과 방향을 찾아내는 능력이다. 즉, 인간의 해석력이 AI 창작을 예술로 완성시킬 수 있는 핵심 요소가 된다.
이와 관련하여, ‘확장된 창조성(Extended Creativity)’ 개념이 주목받는다. 이는 인간의 창작 능력을 AI의 계산력, 패턴 탐지력, 무작위적 조합 능력과 결합하여 새로운 예술 세계를 창출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AI는 수백만 개의 이미지 조각을 조합하여 전혀 새로운 시각적 구도를 제안하고, 인간은 그중 우연히 파생된 ‘비정형 조합’을 발견하여 정서적 메시지를 부여한다. 이처럼 실수의 개념은 인간-기계 협업 구조 안에서 재정의될 수 있으며, 이는 새로운 창조의 패러다임을 형성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AI 시대의 예술은 ‘실수는 오류인가, 창조인가’라는 이분법적 질문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신 우리는 실수의 맥락과 그것을 해석하고 의미화하는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 AI는 실수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AI의 예상치 못한 산출물에서 새로운 창조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상호작용이야말로 AI 시대 예술의 진정한 가능성이며, 인간 창조성의 지속을 보장하는 열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