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 미래 기술 트렌드 분석

AI로 부활한 고대 언어 해독 시도

dohaii040603 2025. 5. 27. 00:54

1. 고대 언어 해독의 역사와 한계

고대 언어는 인류 역사와 문명의 근간을 이루는 귀중한 자산이지만, 이를 해독하는 일은 수백 년 동안 인류학자, 고고학자, 언어학자들에게 커다란 난제로 남아 있었다.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 메소포타미아의 쐐기문자, 잉카 문명의 키푸와 같은 상징적 기호 체계, 미크레네 문명의 선형문자 B 등은 일부 해독에 성공했지만, 그 과정은 수십 년에서 수백 년이 걸렸다. 이에는 방대한 양의 문헌 데이터 부족, 문맥적 단서 결핍, 해당 언어가 사용된 사회·문화적 배경에 대한 불확실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특히 언어 자료가 불완전하거나 단일한 유적에서 발견된 경우, 해독의 정확성은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예컨대 인더스 문명의 언어는 수천 개의 도장이 발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해석은 거의 불가능한 상태이며, 에트루리아어 역시 이탈리아 고대 문명임에도 불구하고 라틴어와 뚜렷이 다른 구조 때문에 해독이 어려운 대표 사례로 꼽힌다. 이처럼 고대 언어 해독은 단순히 언어학적 접근만으로는 한계가 많았고, 다학제적 해석이 필수적이지만 체계적으로 결합된 데이터가 없다는 점이 최대 약점이었다.

하지만 2020년대 중반부터 등장한 딥러닝 기반 언어 모델은 이러한 상황에 변화를 일으켰다. 인간의 학습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대한 데이터 기반 예측 및 패턴 추론 능력을 지닌 인공지능이 새로운 해독 도구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특히 언어 간 유사성과 통계적 구조, 기호의 반복성과 순서, 문화적 연관성까지 학습할 수 있다는 점은 고대 언어 해석에 혁신적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AI로 부활한 고대 언어 해독 시도


2. 인공지능이 고대 언어를 해석하는 방식

AI가 고대 언어를 해독할 수 있게 된 결정적 기술은 바로 ‘언어 모델(Language Model)’의 진화이다. GPT(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 BERT(Bidirectional Encoder Representations from Transformers), LLaMA 등 다양한 트랜스포머 기반 언어 모델들이 수백억 단어의 데이터를 통해 언어의 구조, 맥락, 구문을 학습하며 발전해왔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러한 AI가 단순한 번역기를 넘어, 텍스트의 의미 추론과 규칙화되지 않은 구조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대 언어 해독에 특화된 연구로는 2021년 MIT와 Google AI가 발표한 ‘Machine Translation of Lost Languages’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고대 언어가 일정한 규칙성을 띠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해왔다는 점에 착안해, 언어 간 유사성과 의미적 병렬 관계를 인공지능에게 학습시켰다. 예를 들어 고대 우가릿어와 히브리어는 같은 셈족 언어 계열로 추정되며, 특정 기호의 사용 맥락이 유사할 수 있다는 전제를 활용했다. AI는 이를 기반으로 대응 단어를 추론해 번역 가능성을 높였다.

또한 AI는 단어 간 연관도와 출현 빈도를 통해 의미적 군집을 형성하는 ‘토픽 모델링(Topic Modeling)’ 기법을 사용한다. 이는 인간 연구자에게 실마리가 없던 문맥을 인공지능이 스스로 유사 주제별로 분류해냄으로써 새로운 패턴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더 나아가 컴퓨터 비전 기술을 결합해 파손된 점토판이나 석비, 사본에서 흐릿한 문자를 복원하는 데도 응용되고 있다. 이처럼 AI는 텍스트 인식 + 의미 해석 + 맥락 분류라는 다중 처리 구조로 고대 언어에 접근하며 인간 언어학자의 한계를 보완하고 있다.

3. 실제 해독 사례와 가능성의 확장

AI의 고대 언어 해독 능력은 이미 몇몇 놀라운 성과로 입증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고대 바빌로니아어 점토판 해독 프로젝트다. 수천 개의 점토판에 기록된 쐐기문자를 이미지로 인식한 후, AI가 해석 가능한 아카드어 번역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는 패턴 반복, 공간적 문맥, 시대별 문자 변형 등의 복잡한 요소들이 AI에 의해 효율적으로 처리되었다. 이로 인해 기존에는 연구자 1인이 1년에 한두 점밖에 해독할 수 없던 점토판을 하루 수백 개까지 처리 가능해진 것이다.

또한 AI는 완전히 해독되지 않았던 언어에도 적용되고 있다. 예컨대 에트루리아어의 경우, AI는 라틴어, 고대 그리스어 등과의 의미적 유사성을 바탕으로 일부 동사와 명사의 의미를 추정하고 있다. 이를 통해 몇몇 무덤 명문과 봉헌문에서 사용된 문장이 ‘이곳은 누구의 무덤이다’와 같은 기초적인 구조임을 밝혀냈다. 이는 해독의 실마리를 제공할 뿐 아니라, 향후 문화적 해석 및 역사 복원에도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흥미로운 시도 중 하나는 인더스 문명의 기호 체계 분석이다. 이 언어는 철저히 기호로 이루어져 있어 해독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졌지만, AI는 이를 단순한 조합이 아닌 통계적 구조로 분석했다. 반복 기호의 전후 위치, 길이, 대칭성 등을 기준으로 하여 일정한 규칙이 존재함을 밝혀냈고, 이를 통해 ‘물’, ‘사람’, ‘도시’ 등과 관련된 개념이 반복되고 있음을 추정하게 되었다. 이처럼 AI는 기존 학문에서 ‘불가능’으로 간주된 영역에 새로운 문을 열고 있다.

4. 윤리적 쟁점과 향후 전망

AI가 고대 언어를 해독하는 기술은 그 자체로 혁신적이지만, 여러 윤리적·학문적 쟁점도 동반한다. 가장 큰 문제는 ‘AI 해석의 신뢰성’이다. AI는 확률 기반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결과가 맞을 가능성이 높더라도 의미의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기호의 반복이 ‘신’이라는 단어로 해석되었지만, 실제 고대 문화에서는 다른 맥락에서 쓰였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잘못된 역사 인식을 낳거나, 문화적 오해를 증폭시킬 위험이 있다.

또한 데이터 편향성의 문제도 심각하다. 대부분의 언어 모델은 현대어, 특히 영어 기반의 대규모 데이터에 최적화되어 있다. 따라서 고대 언어의 구조적 특성이 왜곡되거나, 비서구권 문명의 언어 해석에 오류가 개입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AI 언어 모델의 학습 데이터를 다양화하고, 해석 결과를 반드시 인간 전문가와 공동 검토하는 다학제적 협력이 강조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I의 고대 언어 해석 가능성은 더욱 확장될 전망이다. 앞으로는 AI가 고대 사회의 일상 언어뿐 아니라 종교적 의례, 법률 문서, 시문학의 은유 구조까지 해석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를 수 있다. 특히 멀티모달 AI 기술이 도입되면, 유물의 이미지, 문서의 텍스트, 문화적 배경이 통합된 맥락 기반 해석이 가능해져 학문적 시너지가 증폭될 것이다. 인간의 역사 복원이라는 위대한 여정에 AI가 동반자로 자리하게 되는 시대가 이미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